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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사화의 천부인(天符印)과 日 천황의 삼종신기(三種神器)

by 마린 요정 2020. 11. 4.

천부삼인(검, 거울, 방울)

 

1. 고조선 건국정신과 일본의 건국정신

 

일본의 고대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는 일본의 개국시조인 진무(神武)가 하늘을 뜻하는 천조대신(天照大神)에게 칼과 거울과 옥(玉:방울)을 받았다고 전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를 삼종신기(三種神器)라고 높이는데, 진품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지금도

 

① 청동 거울은 이세(伊勢)신궁(神宮)에,

② 칼은 아쯔다(熱田)신궁에, 그리고

③ 옥은 현재 일왕이 사는 이른바 어소(御所)에 안치해놓고 있다.

 

삼종신기 중 일본의 개국시조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핵심은 칼이다. 진무가 곧바로 동정(東征)에 나서는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전쟁을 통해 나라를 개국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하늘에서 강림한 천손(天孫)이 칼로써 세상을 지배한다는 개념의 물건들이다.

우리의 개국시조인 단군도 하늘의 혈통을 계승했다는 천손사상의 산물이지만 단군이 건국한 고조선은 그 이념 체계가 일본과 다르다. 단군의 사적이 실린 최초의 사서는 '삼국유사'인데, 그 「고조선」조에서 일연은 지금은 전하지 않는 '고기(古記)'를 인용해 단군의 사적(史蹟)을 전하고 있다.

 

“옛날에 환국(桓國)이 있었는데, 서자 환웅이 여러 번 세상을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기를 바랐다(『古記』云. 昔有桓國.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라는 내용이다. 하늘을 뜻하는 상제(上帝)의 아들 환웅이 세상에 뜻을 둔 이유는 인간세상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이 먼저 다르다. 그 수단도 달랐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 개국시조들도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는 것을 명분으로 삼지만 막상 그 실현 방법은 무력을 통한 정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환웅은 이점에서도 확실히 달랐다. 그는 3천 여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 신단수 아래 내려와 신시(神市)를 건설하는데, 이때 그가 거느리고 내려오는 관리들이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이다.

 

그래서 개천절 노래가 “비, 구름, 바람 거느리고…”라고 시작하는 것인데, 풍백의 백(伯)에 대해서는 『예기(禮記)』 「곡례(曲禮)편」에 “오관(五官)의 우두머리를 백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우사, 운사의 사(師)에 대해서는 『서경(書經)』 「익직(益稷)편」에 “주에는 12사를 두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풍백은 수상(首相)을 뜻하고 우사, 운사는 그 지휘를 받는 하관(下官)의 명칭이다. 또한 농사(農師), 공사(工師), 어사(漁師), 노사(弩師)라는 말처럼 고대의 사(師)는 구체적인 담당 업무가 있는 전문 관리를 뜻했다. 바람과 비와 구름을 주관하는 풍백, 우사, 운사는 그 이름이 뜻하는 대로 농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벼슬아치들인데, 환웅은 이들과 함께 곡식(穀)과 생명(命)과 병(病)과 형벌(刑)과 선악(善惡) 등을 주관하는 관리들과 함께 세상에 나타난다. 이들이 ‘무릇 인간의 360여개 사를 주관’하는 전문 관리들이다.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하기 위해서’ 내려온 환웅은 그 뜻을 실현하는 방법도 평화적이어서 백성들의 농경 생활에 꼭 필요한 능력을 가진 전문가들과 함께 나라를 건국한 것이다.

 

3천여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환웅이 건설한 신시(神市)는 무력이 아니라 우수한 영농기술과 각종 전문 기능을 가진 선진조직에 현지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복속(服屬)하면서 건국된 것이다.

 

역사상의 모든 개국이 무력충돌에 의한 정복이거나 압도적 무력에 눌린 복속인데, 환웅의 경우는 피정복민의 자발적 복속에 의한 개국이었다. 실생활에 유리한 각종 전문지식을 가진 집단이기 때문이니 피정복민의 자리에서 복속이라기 보다는 자발적 수용(受容)에 가까운 것이었다.

 

환인과 환웅이 뜻을 실현하는 과정도 평화적이었다. 『고기』는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 태백산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하는 것(弘益人間)이 마땅한지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이타적(利他的) 목적이 환웅과 단군의 고조선 개국이념이었다. 홍익인간을 이념으로 개국한 나라는 고조선밖에 없었다.

 

개인적, 집단적, 국가적 이기주의와 증오가 횡행한 결과 개인과 국가와 인류 전체가 큰 위기에 빠져 있는 지금 공익적 이념과 그를 실현할 전문조직을 통한 평화적 건국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폭력을 통한 정복과 역시 폭력을 통한 저항으로 영일이 없는 인류에게 환웅과 단군의 이런 평화적 건국이념은 현재에 되살리고 확산시켜야 할 소중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이덕일(역사평론가)

 

 

2. 신권(神權)의 상징인 천부인(天符印)

 

천부인은 신권(神權)의 상징으로써 3가지로 되어있다고 전해진다. 이에 관한 학설은 대종교에는 "거울, 북, 검" 설, 국ㅎ가연구가인 최남선(崔南善 : 1890~1957)의 "거울, 검, 관" 설, 천도교와 남한 사학계의 "검, 거울, 방울" 설로 되어있다.

 

천부인을 검, 거울, 방울로 보는 학설의 근거는 북한에서 발굴된 조문경(粗紋鏡)과 팔주령(八珠鈴), 비파검(琵琶劍 : 비파형 동검)인데 이 청동기물들이 기원전 10세기와 기원전 26세기에 제작되었다고 하는 설이 있다.

 

검과 거울과 방울 천부인 3개는 한웅천제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실 때 한인천제로부터 받은 신표로써 법(法)과 원리(原理)의 상징이다. 즉 검은 원리의 칼로 죄악과 삿된 관념을 끊으라는 뜻이다. 그리고 거울은 거울과 태양처럼 밝은 인간 내면의 신성(神性, 본성)을 밝히라는 뜻이며, 방울은 흔들면 그 소리가 사방으로 퍼지듯이 법과 원리를 깨달고 알리라는 뜻이다.

 

한웅은 천제를 드릴때나 행차 시에는 풍백, 우사, 운사 삼사 중 가장 우두머리인 풍백은 청동거울을 들고 앞장 섰고, 우사는 방울을 흔들며 주변으로 나아갔고, 운사는 백명의 무사를 거느리고 천부의 검으로 호위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천부(天符)의 법과 원리는 전달되지 않고 일본 뿐만 아니라 고대 한국의 영토였던 유라시아 대륙 곳곳에서 유물이 발견되고 있고, 무속에 많이 남아 전해지고 있는데 그 기원과 의미는 모두 비슷하다. 천부의 법과 원리는 한민족의 경전이며 세계 최고의 고문서인 천부경(天符經)에서 찾을 수 있다.

 

 

3. 日 천황의 삼종신기(三種神器)

 

일본 황권의 상징으로, 이를 소유한 사람이 천황이 된다는 삼종신기(三種神器).

일본천황의 즉위식에 절대로 빠뜨릴 수 없는 의식이 바로 삼종신기를 전수받는 것이다. 이 보물을 전수받는 것은 하늘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은 천손(天孫)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대(先代) 천황이 사망하고 황세자가 천황위에 오르면 반드시 이 삼종신기를 전수받는다.

 

이 의식은 일본 건국신화에서 유래되고 있다. 일본신화에서는 천손(天孫)인 니니기노미코도가 세 가지 보물을 갖고 내려온다. ‘고사기’, ‘일본서기’에 따르면 태양의 신 ‘아마테라스(天照大神)’가 천손강림(天孫降臨)할 때 손자 니니기노미고토에게 “나의 혼이 담긴 것”이라며 이 3개의 보물을 전달했고 태양신의 후손인 천황은 이를 보물로 삼았다.

 

아마테라스는 손자에게도 자신의 혼으로 알고 제사지내도록 일렀다.

3종의 신기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절대적인 신격화와 관련된 것이다. 그녀가 이들 유물을 하사했다는 것은 제사권과 절대권을 부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천황가의 신사인 이세신궁에 이 보물이 안치되어 있고 황위를 계승할 때도 이 보물을 전달하는 의식을 치른다. 이것을 갖지 못한 천황은 정통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삼종신기는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복을 주는 물건으로 믿어져 기원의 대상이 된다. 일본에서는 덕을 보기 위해 신사로 찾아가 참배를 한다. 아츠타진구에는 ‘신’외에도 영험하다고 모셔둔 물건이 있는데, 황실에서 왕의 계승을 상징하는 세 가지 물건(三種神器) 중의 하나인 칼(くさなぎのみ劍)을 보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연간 800만 명이 참배를 온다고 한다.

 

 

4. 일본인의 뿌리는 한민족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과학전문지 <디스커버 1998년 6월>지에서 <일본인의 뿌리>라는 논문을 통해, “현재 일본인은 유전학적으로나 골상학적으로나 한국 이민족들의 후예임이 분명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일본에서 발견되는 청동기는 일본에 이주한 한민족이 만든 것이 분명하며”, “이는 한국과 일본 두 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이 극명하게 그 관계를 밝혀주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주장이 옳다면 일본 건국의 뿌리는 바로 우리 한민족이다. 일본의 일대 변화를 가져왔던 ‘야요이(彌生)문화’는 단군조선 말기에 한민족이 동(東)으로 대이동을 하여 일본에까지 가서 정착하는 단군조선의 역사와 부합되는 것이다. 이들 청동기는 일본열도에 이주한 한민족이 만든 것이 분명함은 한국과 일본열도 두 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이 극명하게 그 관계를 밝혀주고 있다는 것이 제러드 교수의 주장이다.

 

일본 도쿄(東京)대학교 사사야마(笹山晴) 교수도 ‘일본고대사 연구’에서 “야요이 문화는 일본에서 자생적으로 발전된 것이 아니라… 해외에서 도래한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도래한 것이라고 밝히지는 않았으나 ‘해외(海外)’라는 것은 곧 ‘한국’을 암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는 일본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5. 황실 고분 조사 금지

 

한일고대사에 조예가 깊은 고 김향수(아남그룹 명예회장) 씨는 “일본 천왕 즉위식에서 전달되는 삼종신기(三種神器)라는 이른바 동경(銅鏡), 동검(銅劍), 곡옥(曲玉) 역시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에 의심을 하는 한일 학자는 없다. 이 세 가지는 가야의 고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일본은 고대 유적지 발굴 특히 일왕가와 연관된 유적조사는 금기로 하고 있다. 출토물들이 1만 여점이 넘는데 전부 비밀에 부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은 유적들로 볼 때 고대 일본의 지배자는 고조선을 떠난 정복자였다는 것을 알수 있다. 다음에 삼한을 떠난 정복자가 일본에 정착하고, 이어서 삼국을 떠난 정복자가 일본에 정착했다. 지금 일본의 주류를 이루는 인종은 이들의 후예들이다. 그들이 조상의 나라를 떠나 갈 때 몸에 지니고 간 것이 옥(玉)과 칼(劍)과 거울(鏡)이었던 것이다.

 

단군의 개국설화가 고대일본에 전래돼 민간신앙으로 정착했음을 알려주는 자료들이 일본 북구주지방의 한 신사에 남아있다. 북구주 후쿠오카현 소에다정의 영언산 신사에는 한국의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웅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전하고 있다.

 

영언산 신사의 개창설화를 표현한 이 그림은 전지크기로 환웅이 검은 수염에 박달나무 이파리로 장식한 옷을 입고있는 모습을 담고 있으며 ‘환웅’의 이름은 ‘항웅’으로 표기돼 있다. 유적을 발견한 박성수 교수는 “일본 북구주에 단군신앙 유적이 있다는 것은 고조선시대부터 조선족의 일본열도 진출 및 개척사실을 뒷받침하는 귀중한 사료”라고 말했다.

 

지난 2001년 12월23일에는 아키히토 일왕이 “개인적으로 간무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기록된 것과 관련해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은 놀라움보다 “어, 일왕이 웬일이야”였다. 새로운 사실이라는 것보다는 일왕이 직접 이를 말한 배경에 더 주목했다. 그만큼 우리의 머리는 일본 고대문화가 우리 조상들의 주도로 이뤄졌으며, 일본 천황이 우리의 후손이라는 주장에 익숙하다. 천황 이야기는 이같이 한․일 양국의 시간과 공간을 넘어 신화, 역사, 상상력 속에 뒤엉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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