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왜 얼굴이라고 부르게 됐을까?
얼굴은 ‘얼’과 ‘굴’로 이뤄진 순우리말이다.
얼은 흔히 정신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데, 정신의 골격 또는 정신의 핵에 해당하는 것이 얼이다.
굴은 구멍 또는 골짜기를 뜻한다. 굴은 골과 쓰임새가 거의 같아서 옛말에서 ‘얼굴’은 ‘얼골’로 쓰이기도 했다.
따라서 얼굴이란 얼이 깃든 골 또는 얼이 드나드는 굴이란 뜻이 된다.
눈, 코, 입, 귀 등이 자리한 부분을 ‘얼굴’이라는 말로 아우른 옛분들의 지혜가 참으로 경탄스럽다.
한자말 ‘안면顔面’이나 영어 ‘페이스face’에 비하면 우리말 ‘얼굴’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통찰까지 담고 있지 않은가.
얼이라는 말은 그 본래의 뜻을 바탕으로 여러 어휘로 파생되어 두루 쓰인다.
‘얼간이’는 말 그대로 얼이 간 사람이라는 뜻이다.
얼은 나가기도 하고 들어오기도 한다. 들락날락 하는 얼의 속성 때문에 누구든 얼간이가 됐다가도 다시 얼찬이로 돌아올 수 있다. 얼간이가 되는 건 한순간이다. 감정에 빠지고 욕망에 휘둘리는 순간 얼은 휘릭 빠져나간다. 감정과 욕망을 자극하는 잘못된 정보가 얼을 밀어내는 것이다.
얼은 정신의 핵이기 때문에 얼이 사라지면 곧바로 감정과 욕망의 노예로 떨어지고 만다. 스스로 노예에서 벗어나는 길은 다시 얼을 찾는 것이다. 얼을 찾는다는 것은 삶의 주인자리를 되찾는 일이다.
‘어리석다’는 것은 얼이 익지 않아 어설픈 상태 또는 얼이 썩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상한 음식처럼 얼이 변질된 것이다. 얼이 생동하는 사람은 삶의 목적이 분명하다. 다른 사람에게, 또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이는 얼의 작용이기 때문에 얼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삶의 목적이 한결같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지금 여기’가 아닌 죽은 다음의 일에 관심을 쏟는다. 죽어서 좋은 데 가기를 소원하면서, 살아서는 스스로 삶의 주인이기를 포기해버린다. 어리석은 사람에게 돈이 생기고 권력이 주어지면 더욱 불행한 사태가 벌어진다. 돈 때문에 패가망신하거나 권력을 등에 업고 사리사욕을 채우려 드는 사람들을 날마다 뉴스에서 접하지 않는가. 어리석은 사람에게 돈과 권력은 재앙이나 다름없다.
‘어리둥절하다’와 ‘얼떨떨하다’는 얼이 흔들려 정신이 없는 상태를 나타낸 말이다.
‘얼렁뚱땅’은 어감이 참 재미있다. 이는 얼김(정신이 얼떨떨한 상태)에 상황을 대충 넘기는 것을 뜻한다.
‘어리버리하다’는 말은 정신이 산만하여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태,
‘얼치기’나 ‘얼뜨기’는 얼이 좀 나가서 부족한 상태를 일컫는다.
매운 음식을 먹을 때나 술을 마실 때 흔히 ‘얼큰하다’고 하는데, 이는 매운 맛이나 취기 탓에 정신이 얼얼한 상태를 뜻한다. 마치 얼이 크게 생동하는 느낌이어서 이렇게 표현했을 수도 있다.
‘얼싸안다’는 말은 듣기만 해도 두 눈이 스륵 감기면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얼싸안는 것은 두 팔을 벌려 서로 껴안는 모양새를 일컫는다. 그런데 이는 그냥 몸뚱이만 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까지 진심으로 감싸 안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얼싸안는다고 할 수 있다.
얼싸안으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한다. 얼싸안긴 사람은 자신이 온전히 받아들여진다는 안도감에, 얼싸안은 사람은 상대방을 존중함으로써 따뜻하게 차오르는 기쁨에 그런 것일 게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얼’에서 비롯한 표현들이 무척 많다.
어처구니가 없을 때 요즘 흔히 쓰는 ‘헐’이라는 말도 얼과 관련된 어휘로 새롭게 올려야 할지 모른다.
‘헐’이라는 글자를 풀면 ‘虛(빌 허) + 얼’이라 할 수 있으니, 이는 흥미롭게도 얼이 나간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물론 재미삼아 풀어본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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