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세익스피어 <리어왕>
감성 교육은 무의식 층에서부터 자아를 개발하는 것이다.
자아 개발의 과정은 왈츠를 추는 것과 흡사하다. 거기에는 구체적인 3박자의 스텝이 있고, 이것을 밟아나갈 때 '나'라는 심리적 구심점이 서서히 생기게 된다.
l. 네 자신을 알라 - 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라
l. 네 자신을 받아들여라 - 네 심정을 의식적으로 느껴라
l. 네 자신이 되어라 - 네 감정과 이성을 통합하라
네 자신을 알라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기의 전부를 아는 것을 뜻할 텐데, 감성 교육의 견지에서는 기본적으로 나의 가슴, 나의 혼을 아는 것을 말한다. 이 순간 내가 느끼고 있는 다양한 느낌과 감정들이 그것이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호흡을 고르고, 외부에 가있던 주의를 내면으로 옮겨와서 자기 마음 속에서 움직이는 감정의 모습들을 관찰한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어느 순간에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 화 감정, 혹은 슬픔 속에 빠져 있으면서도 현재 자기가 화가 나있다,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 인식하지 못한다. 감정에 휘말려서 그럴 수도 있고, 자기 머리가 가슴이 느끼는 감정을 부인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머리와 가슴이 직결되지 않은 것이다.
나의 느낌, 나의 감정은 나밖에 알 수가 없다. 내가 그것을 자각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나 자신을 도울 수 없고, 다른 사람도 나를 도울 수 없다. 또 내가 그런 상태에 있는 한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런 동안 나는 내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하며, 가까운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해와 혼선을 빚는다. 자아 개발의 첫 스텝은 매순간 나의 심정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인식하는 것-아는 것-이다.
감성 교육의 목표는, 감정 세계를 넘어서서 초월적인 수도승이 되기보다는 모든 인간적인 느낌을 풍부하게 느끼고 나누는 '인간적인 인간'이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초월적인 세계와 현실 세계를 융합한 좀더 깊이 있는 삶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것을 한 마디로 '삶의 예술'이라고 부른다. 삶의 예술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자아 개발을 향한 왈츠의 둘째 스텝과 셋째 스텝을 배워야 한다.
네 자신을 받아들여라
내 심정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나의 감정과 느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감정의 기운이 몸을 엄습할 때 자신에게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한다.
내 정신이 지금 어디에 가있는가?
나는 지금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왜 이렇게 우울한가, 왜 화가 끓고 있는가, 왜 울고 싶은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현재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가?
그리고는 이 질문들에 대해 떠오르는 답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다. 그런 후에, 그 답을 스스로에게 되풀이해서 말해 준다.
'나 지금 정말로 너무 화나, 그건 너무나 부당한 일이야.'
'물불 가리지 않고 다 집어 던지고 미친 듯이 소리지르고 싶어. 그게 지금의 내 심정이야. 그러나 그럴 수는 없지, 그래봐야 나만 손해야.'
'화장실에 가서 좀 있다 와야겠다. 거기서 물이라도 실컷 틀고 화를 좀 씻고 나오면 좀 낫겠지.'
이렇게 자기와 솔직한 대화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입 꼭 다물고 부어 있다가 누가 옆에서,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하고 물으면, "아니, 아무 일도 없었어. 나 괜찮아."라며 자기의 심정을 감춰 버린다. 혹은 "나도 모르겠어. 나를 가만 놔둬 줘."라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내가 마음이 상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첫째 스텝)과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둘째 스텝)의 차이는 무엇인가?
내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내 의식이 내 가슴과 몸 전체에서 일고 있는(소용돌이치는) 어두운 감정의 기운을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그 속에 들어가서 그 기운과 하나가 되어 의식적으로 느껴 보는 것이다. 얼굴 표정이 굳고, 시야가 좁아지고, 눈앞이 흐려지고, 심장이 뛰고, 위장이 죄어오고, 팔·다리에 기운이 쫙 빠지고, 식은땀이 나고, 머리가 빠개지듯 아프고, 목이 뻣뻣하게 굳고, 이런 현상이 일어날 때 그것을 바라보면서 이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머리와 가슴과 몸이 통하게 만든다. 저항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고, 그대로 하나가 되어 막힌 데 없이 뚫리게 한다. 이것이 실존적인 차원의 도통道通이다. 내 존재 안에 국도가 뚫리는 것이다.
네 자신이 되어라
내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말의 두 번째 의미는, 나의 감정과 느낌에 대해 내가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말이다. 감정의 늪 속에 빠져 있는 내 자신을 비판하지 않고, 추한 모습을 저주하지도 않는다. 그 순간에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내 속에서 어두운 기운이 끓어오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내가 책임지고 처리해야 할 나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과 생각은 내가 지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내 우주의 창조주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그럴 때 비로소 내 안에 주인이 서게 된다. 이것이 자아 개발을 위한 왈츠의 두 번째 스텝이다.
세 번째는 감정의 격동이 한 차례 지나간 후, 그것을 간략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 나와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그 상황을 평가할 수 있다. 괴로운 심정을 말로 표현해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나누고 나면 놀라울 정도로 가벼워진다. 가까운 사람에게 자기의 감정 문제를 말로 표현·전달하는 습관은 본인의 정신 건강과 주위 사람과의 관계를 위하여 아주 중요한 일이다.
단, 내 감정 문제를 상대방에게 표현·전달하려고 할 때,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하는 것
내 심정을 솔직하게 전달하되, 내 감정의 문제는 내 문제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한다. 설사 상대방이 과오를 범했다 할지라도 내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내가 창조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스리는 것 역시 내 책임이다(상대는 그 자신이 책임져야 할 자기의 감정 문제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그의 영역이지 나의 영역이 아니다).
나의 표현 방법이 나의 전체적인 마음(사랑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용서하는 마음)과 연결성을 잃지 않게 한다. 감정에 휘말린 채 그 속에 빠져서 앞도 옆도 보지 않고 쏟아내고 나면 곧 죄의식과 수치심을 느끼고 후회하게 된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내 불편한 마음에 대해서 상대를 탓하거나 감정을 폭발시키는 등 고의적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려는 마음으로 복수를 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전달하되 그 방법이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감정과 이성의 통합이 일어난다.
건강한 인격의 뿌리, 즉 자아는 감정과 이성이 융합되는 과정에서 생긴다. 감정 세계를 닫고 이성으로만 행동하는 사람은 딱딱하고, 폭이 좁고, 차다. 이런 사람은 가슴이 열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슴은 열려 있는데 통제가 안 되는 사람은 오만 가지 감정을 이성의 체에 거르지 않고 내뿜기 때문에 어린애 같고 야만스러워서 함께 생활하기가 힘들다.
우리가 원하는 삶의 예술가로서의 자아상은 가슴이 넓고, 감정이 풍부하며, 자기 표현이 명확하고, 이성으로 자기를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문제
한국인들의 다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것은 자아 개발이 안 된 부모 슬하에서 자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일은 잘 하지만 자기가 서있지 않기 때문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남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고, 항상 뭔지 모를 불안감에 싸여 있으며, 사회인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과거에는 그런 사람들이 자기 발전을 도모할 길이 없었다. 알맹이 빠진 쭉정이 같은 삶을 살다가 왔다 간지도 모르게 죽어 버리고, 그 자손 또한 대대로 그런 식으로 사는 것이 숙명이었다. 자아 개발이 안 되어 있는 부모는 자녀의 자아를 개발시켜 줄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나를 발견하고, 성장시키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우리 선조들의 감성적 무지가 만들어 놓은 함정에서 헤어나올 수 있다. 인성 개발의 여러 가지 방법들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여러 가지 방법들은 같은 원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 원리는 바로 위에서 말한 자아 개발 왈츠의 3박자이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방법
내 감정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몸 속에 요동하는 감정의 기운을 그대로 느껴 본다.
심정을 말로 표현해 낸다.
자기의 감정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면서 깊이 느껴 보면 '내 속에 이런 심정들이 있었구나, 나라는 사람이 이런 면이 있는 사람이었구나'하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자기 발견의 과정을 꾸준히 해나가면 자기 감성 세계의 내면이 얼마나 여러 층인가를 보게 되고, 또 자기 속에 상충되는 면이 얼마나 많은가를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알고 보면 나는 잘나기만 한 사람도 아니고, 못나기만 한 사람도 아니며, 고상하기만 하거나 천박스럽지만도 않다.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각양각색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나의 모습을 알게 될 때 마음의 문이 열리고, 생각의 폭이 넓어지며,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관용성이 생기게 된다.
네 감정들을 벗으로 삼아라
나를 알고, 받아들이고, 내가 되기 위한 지름길은 내 감정들을 벗으로 삼는 것이다. 감정뿐만 아니라 미세한 나의 느낌들도 나의 솔직한 모습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편지를 쓰고 하는 것이 바로 나를 발견하고 키우는 일이다. 내 감정들은 시시각각으로 나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자기의 감정과 느낌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터놓고 나누기로 하면 모든 사람과 세대 차이를 느끼지 않고 그대로 통할 수 있다. 자기의 감정을 벗으로 삼을 때 우리는 여러 사람들과 깊이 있고 폭 넓은 인간관계를 나눌 수 있다.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모든 외부적 차이를 초월한 공통 언어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성이 열리면 이성이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진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자기 자신의 삶을 검토할 수 있게 되고, 새로운 선택의 여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하여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고 통합된 자기로 서면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가 있다. 이것이 감성 교육이 지향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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